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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 | 복음을 찾는 거룩한 땅 "연풍순교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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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건여행사 작성일17-03-27 14:46 조회1,4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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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의 신유박해는 어린 싹을 틔우던 연풍의 신앙 공동체까지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이 박해로 몇몇 교우들이 체포되어 서울로 이송되면서 김흥금과 몇몇 교우들은 경상도로 피신해

신앙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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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풍순교성지는 서울을 중심으로 일어난 박해를 피해 은신처를 찾는

순교자들의 피난처로 이용되어 일찍이 신도촌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연풍은 103성인에 속하는

황석두 루가 성인의 고향입니다. 천주교신앙을 받아들인 성인과 이를 마땅치 않게 생각한 부친이

작두날에 목을 맡기든지 하라고 강요하자 결코 진리를 버릴 수는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작두날에

목을 디밀었습니다. 이후 성인은 아내와 동정 부부로 살면서 일생을 교회에 헌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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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의 시신은 갈매못에서 홍산 삽티를 거쳐 고향 병방골로 이장되었습니다.

1979년에는 그 묘소가 발견되어 3년 뒤 연풍 성지로 천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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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박해 때 다블뤼(안돈이 안토니오) 주교님, 오메트르(오 베드로)와 위앵(민 루가) 신부님,

장주기(요셉) 회장님과 함께 충청도 갈매못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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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의 시신은 갈매못에서 홍산 삽티를 거쳐 고향 병방골로 이장되었습니다.

1979년에는 그 묘소가 발견되어 3년 뒤 연풍 성지로 천묘되었습니다.



1866년에 흥선대원군이 일으킨 병인대박해로 인해 피의 순교사로 변하게 됩니다.

교우들은 이제 연풍 관아로 끌려가 모진 고문 끝에 죽음을 당하거나 쥐도 새도 모르게

도살장(연풍 옥터)이란 곳으로 끌려가 목숨을 바쳐야 했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잠시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던 교우들도 충주서울 등지에서 다시 박해자의 칼날을 받아야만 했죠.


이제 그 지방 사람들에게 도살장으로 알려진 바로 그 장소에 연풍 성지가

들어서 있으며. 거룩한 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곳에 두 발을 디딘 채,

박해의 서슬이 시퍼렇던 그 당시에 이름 석자도 남기지 못하고 천주 대전에

숭고한 목숨을 바친 민초들은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옵니다.

그 모두가 우리 후손들에게 지고한 복음을 남겨 준 신앙 선조들이라고 생각됩니다.


연풍은 이처럼 초기 교회 때부터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뿌리깊고 끈질긴 복음의 역사를 간직해 왔습니다.

 

<자료출처 연풍성지 홈페이지 www.ypseong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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